의산리 둠벙가의 추억
유년시절
우리집 앞마당에 서면
엎지면 코 닿을 듯이
인의산이 아주 빤히 보였다.
그리고 집 앞엔 방죽이 하나 있었는데
어린 내 눈엔
물이 가득 찬 방죽은 크고 넓게만 보였었다.
내 나이 다섯살 때 즈음이었나???
어느 햇살 고운 초여름날 오후
앞집 살던 친구 땅꼬와
방죽가에서 물놀이를 하고 놀았다.
엄마는 일꾼들을 이끌고 밭에서 일을 하고 계셨는데
온통 신경은
물가에 놀던 딸년에게로만 향하셨었나 보다.
한참 물속에 손을 디밀어
빨래하는 흉내를 열심히 내던 중에
그만 발이 미끄러져
풍덩 방죽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내가 물에 빠져 허우적대자
겁이 난 친구는 어른들에게 알리지도 못한 채
급히 자기네 집으로 달려가면서 집 앞에서
'00이 물에 빠졌어...'만 외쳤대나 워쨌대나...
딸 친구가 뭐라곤가 하는 거 같은데
거리가 멀어서 잘 못 알아들으시고
엄마 눈에 딸년 모습이 보이질 않으니
놀다 집으로 들어갔나 보다 하셨댄다.
물 속에 빠진 난
팔 다리를 필사적으로 허우적대며
아무리 소리 쳐 '엄마'를 부르려 해도
눈으로
입으로
코로 차 오르는 물 때문에
캑캑거리다 급기야 지쳐서
아마 기절해버렸던 거 같은데...
밭의 일꾼들이 새참을 먹으러 들어 간 사이
엄마는 밭가를 둘러 보시다가
좀전에 딸년이 방죽가에서 놀던 생각이 나시어
뭐 빠뜨린 건 없나 살피시러 방죽가로 오시게 되었단다.
아뿔싸...
물 위에 시신처럼 둥둥 떠 있는 딸의 모습을 발견하시곤
허겁지겁 뛰어 들어 나를 안고 나오셨단다.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니건만
허여멀겋게 축 늘어져버린 딸의 모습에 허둥지둥
엄마는 코로 입으로 연신 내게 인공호흡을 하셨다.
그리고 얼마 후...
그제서야
나는 감긴 눈을 겨우 뜨며 힘없는 소리로
'엄마...'하더니 기절해 버리더란다...
"엄마!
만약에 내가 그 때 죽어버렸음 어쨌을까?"
장난스레 웃으며 묻는 내게 엄만 눈을 흘기시며
경악을 금치 못하셨다.
"이런 금쪽같은 내 새끼...
그 때 가 버렸으면...
내가 어케 여지껏 살았겠냐..."
그 사건 이후로
딸사랑이 극진하셨던 아버지께선
'물가 출입 금지령'을 강력하게 명하신 바람에...
난 지금도 맥주병 신세 면하지 못했고...;;
재작년에 '나의 살던 고향'을 둘러보러
드라이브 가는 길에
잠깐 스쳐 지나며 자세히 바라 본
의산 4구 952번지
- 술래잡기하며 뛰놀돈 뒷산은
- 그 사이 야트막한 야산으로 변해버렸고...
옛 우리집 앞 그 둠벙...
에게게...
정말 코딱지만하더구만...^^
내가 생사의 기로에 서 있었던
그 커다랗던 방죽이
바로 저렇게 쬐끄만 것이었단 말여???
낳아주시고 길러 주신 것만으로도
내겐 차고 넘치는 복이었건만
죽음의 문턱에서 내 목숨을 살려 내신 울 엄마가
오늘따라 몹씨도 그리워지네...
아마도 오늘쯤...
꿈길에 오시지 않으실까...
승질머리 못 된 딸년 보고싶으셔서...
아~~
또 가슴이 시려오네...
살아계실 적에 못다 한 孝가
늘 가슴을 아리게 하네...
요즘도 난...
무룡동 입구의 우리집 마당에서
팔방치기하는 꿈을 꾸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