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운글방
내시가겁이없다
이쁜꽃향
2010. 12. 16. 10:34
장작 한 단에 다 타버릴 것 같다 바짝 마른 내시가 목에 심줄을 파랗게 세우고 논 댓 마지기에 팔려온 열 네 살짜리 아내를 닦달하고 있다 궁궐에서는 그저 시키는 대로 “예! 예!”만 하던 위인이 분원리에 와서는 뭉게구름 몇 점 떠가는 하늘에까지 새파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알맹이 없는 내 시가 겁이 없다 - 윤정구(1948 - ) ‘내시가겁이없다’ 전문. 교과서에 띄어쓰기 예문으로 실리면 좋을 성 싶은, 재미있는 시다. 시인은 제목의 모든 단어를 붙여 쓰는 파격으로 독자들의 눈길을 끈다. 그리고 둘째 행에서는 ‘내시’로 쓰다가 마지막 행에서는 ‘내 시’로 띄어 쓴다. 세상에 대해서는 비굴하다가 만만한 마누라에게 큰소리치며, 강자에게는 약하고 약자에게는 강한 내시. 이렇게 겁이 없는 내시가 ‘내’가 되고, ‘내 시’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간이 배 밖으로 나온 나, 알맹이 없는 내 시는 쫓겨날 일만 남았다. *** 김동찬, 미주한국일보 <이 아침의 시> 2010년 12월 1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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