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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문 강에 삽을 씻고’

이쁜꽃향 2011. 7. 27. 09:46

흐르는 것이 물뿐이랴

우리가 저와 같아서

강변에 나가 삽을 씻으며

거기 슬픔도 퍼다 버린다.

일이 끝나 저물어

스스로 깊어가는 강을 보며

쭈그려 앉아 담배나 피우고

나는 돌아갈 뿐이다.

삽자루에 맡긴 한 생애가

이렇게 저물고, 저물어서

샛강 바닥 썩은 물에

달이 뜨는구나

우리가 저와 같아서

흐르는 물에 삽을 씻고

먹을 것 없는 사람들의 마을로

다시 어두워 돌아가야 한다.


- 정희성(1945 -   ) ‘저문 강에 삽을 씻고’ 전문.


허리가 휘어지게 삽질을 해도 기다리고 있는 현실이 ‘먹을 것 없는 사람들의 마을’이기 때문일까. 저물 무렵, 한 사람이 돌아가지 않고 스스로 깊어가는 강을 보며 담배나 피우고 있다. 삽이 물에 씻겨 말끔해지듯이 슬픔도, 기쁨도, 우리의 생애도 강물 따라 흘러가고 있다. 우리도 저와 같이 저물고 있지만, 샛강 바닥 썩은 물에도 달은 다시 떠올라 흘러가는 모든 가여운 영혼들을 위로해주리라.


*** 김동찬, 미주한국일보 <이 아침의 시> 2011년 7월 21일자.